시즌제 역사 쓸까…‘슬기로운 의사생활’ 감정총량의 법칙 [연예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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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현 CJ ENM 소속 신원호(44) PD 커리어는 풋풋한 서른 살 청년 시절을 기점으로 이미 될 성 부른 떡잎을 틔웠다.
일찍이 20대 후반 KBS 공채 PD로 입사한 신원호는 예능국을 거쳐 한국판 ‘섹스앤더시티’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 불리는 2004년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드라마 연출가로서의 높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어느 덧 경력 17년차, 신원호는 “(드라마) 연출은 작가의 이야기를 빌려 쓰는 사람”이라며 15년 지기 인연 이우정 작가의 위상을 높이는 대신 자신의 공을 축약하는 여유를 드러내기도 한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지난 28일 시즌1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극본 이우정·연출 신원호)은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병원 사람들의 따뜻한 일상 이야기를 담는다.
형식상 기존 휴먼메디컬드라마를 표방했으나 하릴없이 신원호 PD의 특질적인 기호가 디테일로써 곳곳에 인장(signature)화된 케이스다.


이우정 작가진은 첫 의학드라마 집필인 만큼 자문 의사 등 공신력 있는 병원 인력들을 사전 섭외하고 환자실, 수술실, 교수실 등 장기간에 걸친 취재를 상정했다.
덕분에 현직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메디컬극으로서의 고증은 흠 잡을 데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며, 앞선 ‘응답하라’ 시즌과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그랬듯이 특정 시공간에서 캐릭터들이 벌이는 의식주생활, 일, 사랑, 인간관계가 정사각형 구도마냥 공평하게 배분돼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관건은 시청자들의 취향에 따른 호불호 문제다.
당신의 가슴과 머리는 신원호 PD의 전매특허 디테일을 좋아할 수 있는가 없는가.

신원호 PD의 호모소셜(homosocial), 남자X남자 인프라



이익준(조정석), 안정원(유연석), 김준완(정경호), 양석형(김대명), 홍일점 채송화(전미도)는 올해 마흔 살의 의대 교수이며 20년 지기다.
시작점은 이들 다섯 명의 허울 없이 진한 우정을 가볍게 스케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중반부에 도달한 스토리라인은 이변 없이 ‘응답하라’ 시즌의 유구한 러브라인 삼각관계 역사를 답습하듯 양석형, 이익준의 일방적인 사랑에 곤란을 겪는 채송화의 진퇴양난 처지로 이어진다.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러 채송화를 짝사랑하게 된 또 한 명의 남자 후배 안치홍(김준한)까지 이 공공연한 수컷 전쟁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데, 이를테면 11회 속 이익준은 엘리베이터에서 채송화와 나란히 어깨를 붙이고 선 어린 안치홍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리듯이 채송화 어깨를 깊숙하게 어루만졌다.
카메라는 두 남자의 양쪽 어깨에 갇혀 있는 채송화의 아담한 신체사이즈에 더불어 위기감을 느끼는 안치홍의 안면근육을 교차편집했다.
당연하게도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송화를 사이에 둔 안치홍, 이익준의 양보와 투쟁 사이 자기번뇌를 뚜렷한 갈등요인으로 확보할 법하다.


유사한 맥락에서 김준완 역할의 배우 정경호는 신원호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이어 어김없이 베스트프렌드의 여동생을 쟁취해낸 케이스다.
내 친구와 합의만 된다면 친구의 여동생마저 자기 여자로 만들 수 있는 다소 위압적인(?) 세계가 또 한 번 반복되는 격이다.


신원호 세계의 남성들은 언제나 호모소셜(동성사회성) 관계에 기인한 철옹성 같은 모의실험 사회를 구축해왔다.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교도소 내부 남성 수감자들 간의 알력관계와 공조를 그리면서 종국엔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주인공 제혁(박해수)이 염반장(주석태)을 처단하고 출소하는 통쾌한 결말의 반대편에서는, 성 소수자이자 약쟁이인 해롱이(이규형)가 끝내 또 한 번 마약을 흡입하는 패자로 드리워졌다.


‘응답하라’ 시즌은 표면적으론 10대 소녀가 주인공이지만 일본 유명 만화 아다치 미츠루 ‘H2’ 표절 논란이 일었을 만큼, 친구관계이기도 한 두 라이벌 남성의 여자 성장통을 집중 기술하는 드라마다.
‘내 친구에게도 소중한 이 여자를 나는 포기할 수 있는가’야말로 신원호 러브라인의 가장 중대한 화두이며, 이 순간 여자주인공은 다른 누군가를 선택해볼 기회 없이 오로지 지근거리 남성인프라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던 ‘응답하라’ 전 시리즈 결말이 주인공 소녀의 이들 중 미래 남편 후보군으로 귀결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감정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우정 작가진의 치밀한 의료적 사전 조사가 사건을 궁극적으로 해결해주진 않는 드라마다.
즉 갈등구조를 지적 설계로 풀어내는 대신, 인간으로서의 취약한 캐릭터 감정을 각 플롯의 우선순위에 배치해 차후의 의료 폭풍이나 사람관계의 골을 매 순간 봉합해내는 방식이다.


간질환에 걸린 환자들은 기적처럼 평소 소원했던 남편이나 친지의 간을 반드시 이식받게 되고, 심정지 위험에도 관장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환자는 마음 따뜻한 레지던트 도재학(정문성)이 울며불며 무릎을 꿇을 때만 생존할 수 있다.
첩을 둔 남편 양태양(남명렬)을 몸서리치게 증오했던 조강지처 조영혜(문희경)가 “나는 아직도 내 남편 사랑한다”라며 천문학적 위자료 소송을 물리는 후반부 결말이야말로, 감정이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버리는 신원호 세계의 단호한 생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매 순간 감성적이며 호소적인 스토리텔링의 강점은 명확하다.
시청자들로선 드라마를 보면서 평소 험난했던 현실의 피로를 한결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A 장르와 B 장르를 교직한 해외수출형 장르드라마나 까다로운 사회 고발극이 범람하는 현 시점,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가장 대중친화적으로 풀어낸 전략은 이렇다.
요컨대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메디컬 외피를 빌린 지극히 뜨거운 감성드라마로 전 시즌 승승장구를 예고했다.
공교롭게도 신원호 표 90년대 레트로곡의 빈번한 삽입에 따라 음원시장도 이변 없는 ost 호조를 누리고 있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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