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로 드러난 중국의 의지…"미국 눈치 안 본다"

아주경제 / 이재호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열린 정협 경제계 위원들과의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의 반중 세력을 탄압할 근거인 '홍콩 보안법' 제정을 강행키로 했다.


전인대에 상정된 안건이 철회된 사례는 없다. 코로나19 책임론, 홍콩·대만 문제, 중국 기업 제재 등 미국의 전방위적 대중 공세에 더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경제·기술적 자립을 촉구했다. 중국이 이번 양회(전인대·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다시 대미 항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모양새다.

◆"방범창 달겠다는데 왜 난리인가"

중국이 지난 22일 전인대 개막식에서 홍콩 보안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하자 미국 등 서구 사회가 즉각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홍콩에 약속한 고도의 자치권에 종말을 고하는 일"이라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악관과 미국 정계에서는 그동안 홍콩에 제공했던 관세 면제 등 경제적 특권을 없앨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중국이 전인대를 전면에 내세운 건 미국의 반대에도 법 제정을 강행하겠다는 대외적 메시지다. 홍콩 입법회(의회)가 관련 법안을 의결하면 중국 정부가 비준하는 식이 될 것이라던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강도 조치다.

홍콩 보안법이 발효되면 중국이 지목한 반중 인사 및 세력을 강경 진압할 명분이 생긴다. 홍콩의 반중 시위가 대만으로 확산하고 미국 등 서구 사회가 이를 빌미로 중국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 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24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 홍콩주재 사무소는 전날 성명을 통해 "최근 수년간 홍콩의 급진적인 분리 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폭력적인 테러 활동이 격화하고 있다"며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법에 따라 제지·응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이 방범창을 달겠다는데 폼페이오는 왜 긴장을 하나'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미국을 맹비난했다.

논평은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애국자법'과 '국토안보법' 등을 공포하고 현재는 이를 경제·군사·교육 측면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며 "중국의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가 미국의 보안법 조문을 갖다 써도 되는가"라고 비꼬았다.

이어 "미국 입장에서 홍콩은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장기짝일 뿐"이라며 "홍콩을 반중 교두보로 삼아 폭동과 색깔 혁명(정권 교체 운동)을 수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논평은 "(홍콩 보안법에 반대해) 폼페이오가 내는 소음은 예견된 것으로 미국이 어떤 카드를 갖고 있는지 중국도 잘 알고 있다"며 "이중 잣대와 패권 논리로 홍콩을 흔들어도 헛수고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 책임론에 휘둘리지 않는다

이번 양회에서는 홍콩 문제 외에도 중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결심한 듯한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전인대는 올해 예산 초안을 발표하며 국방비로 전년보다 6.6% 증가한 1조2680억 위안(약 216조원)을 배정했다. 지난해 증가율(7.5%)보다 둔화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이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맞은 것을 감안하면 의외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중국 군사 전문가 9명을 상대로 국방 예산 증가율을 물었을 때 3명이 3%, 1명이 5~6%를 예상했고 2명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등에서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의식한 결정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정부업무보고에서 "대만의 분리주의 행동을 결연히 반대하고 저지할 것"이라고 말하며 평화 통일이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탕사오청(湯紹成) 대만 국립정치대 교수는 "표현과 어투의 변화가 독립 성향의 민진당에 대한 경고로 읽힐 수 있다"며 "평화를 언급하지 않은 건 무력 사용을 고려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미·중 갈등의 핵심은 코로나19 책임 공방이다. 자국에서 16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승리를 위해 어떻게든 책임을 중국에 떠넘겨야 한다.

중국도 전 세계 215개국에서 520만명의 확진자, 33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재앙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쓸 수는 없다.

미국이 코로나19 책임론을 포함해 전방위적인 중국 때리기에 나선 이상 중국도 더이상 수세로 일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홍콩과 대만, 경제·군사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다.

◆美 맞서 경제적 홀로서기 가속화

중국이 미국의 위협에 쉽게 굴복하지 않기로 한 이상 경제적 홀로서기가 더욱 중요해졌다. 내수 부양으로 활로를 찾고 핵심 기술의 자립도를 높이는 게 관건이다.

시진핑 주석은 전날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경제계 위원들과의 회의에서 "안전한 발전의 이념을 견고히 하기 위해 약점을 보완하고 산업 사슬과 공급 사슬을 보호하며 중대 리스크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그는 "'수중에 양식이 있으면 마음 속으로 당황하지 않는다'는 건 모든 시대의 진리"라며 인민의 배를 채워주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내수 충족이 발전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라며 "이를 위해 디지털 경제와 스마트 제조, 바이오, 신소재 등 신흥 성장동력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재호 특파원 qingq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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