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82년생 김지영', 일터를 떠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아주경제


직접 읽지는 않았어도 한번쯤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음직한 베스트셀러에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업을 마치고 직장인이 되었지만 출산과 육아로 일을 그만두고 가정에 머물게 된 여성의 이야기다.


이 여성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행복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에 쫓기면서도 남편 노릇에 소홀하지 않으려는, 그런대로 말이 통하는 남편도 있고 사랑스런 아이도 있다. 그런데도 김지영씨는 병이 났다. 깊은 마음의 병.

 

지난 9월 25일 서울 용산구청에서 열린 '용산구 여성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직업체험 부스를 살펴 보고 있다.  



이 책을 밀리언셀러로 만든 돌풍의 원인은 책 속이 아니라 책 바깥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30대 여성들이 놓인 현실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운명은 많은 여성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어렵게 직장에 들어갔지만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서른이 넘으면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또 다른 삶의 과제에 맞닥뜨려야 한다. 남성 역시 나이가 들면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지만, 30대라는 인생의 성공을 향한 수레바퀴를 세차게 밀고 가는 시점에 여성과 남성의 길은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다. 남성은 회사로, 여성은 가족으로.

문제는 이런 사회적 압력이 여성의 삶에 가져오는 단절에 있다.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제 밥벌이는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성별에 관계없이. 성실하게 노력해서 꿈을 이루라는 메시지도 주어지는데, 이때 꿈이란 대부분 직업과 관련된 것이다. 교과서에는 남녀는 평등하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고 쓰여 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여성들은 직업을 갖고 자기 밥벌이를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육아의 시간을 겪으면서 남녀는 평등하지 않고 여성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꿈이 직업이나 사회적인 어떤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아주 뒤늦게 깨닫는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왜 사회가, 기업이 신경 써야 하냐고 묻는 분이 있다면, 이런 대답을 드릴 수 있겠다. 이 문제를 그대로 덮어둘 때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이미 목격하고 있다. 합계출산율 0.98이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는, 이제 기업도 학교도 사회도 혁명적인 변화가 없이는 성장은 물론 지속조차 어려워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경제학자 이철희 서울대 교수는 위기에 몰린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구할 한 가지 대답을 내놨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다. 여기서 30대와 4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일본·스웨덴 등은 25~5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75~90% 수준에 도달했고, 이런 결과는 30대 여성들이 노동시장을 떠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75% 수준을 따라잡는다면, 한국은 2043년 기준 80만명 안팎의 여성인력이 증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부족분을 상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82년 김지영이 일터를 떠나지 않게 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학교에서 배운 자유와 평등의 권리가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여성적 삶의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다. 결혼이나 출산, 양육이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일터에서 만나는 우리들 모두에게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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