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여군, 여성소방관…"체력문제 아닌 일자리"

머니투데이

[낮은 체력시험 기준 논란… '여성혐오'에 '백래시'… "여성 채용 문 넓히고 강한 역량 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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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2일 오후 충남 아산시 경찰대학교에서 열린 ‘2019년 경찰대학생·간부후보생 합동임용식’에서 초급 경찰간부들이 모자를 던지며 기뻐하고 있다. 2019.3.12/뉴스1
우리 사회 '여성 수호자'가 불신 받고 있다. 최근 '대림동 여성 경찰' 영상을 계기로 '여성 경찰 무용론'이 점화된 뒤 소방공무원, 직업군인 등 각 직종의 여성 채용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다.


지난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술에 취한 중년 남성 2명이 남녀 경찰 2명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대림동 여성 경찰 논란'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지난 13일 술에 취해 욕설을 퍼붓는 중년 남성 A씨가 서울 구로동의 한 술집 앞에서 남자 경찰의 뺨을 때리고, 또 다른 남성 B씨가 여자 경찰을 밀치는 모습이 담겼다.

경찰에 따르면 이 영상은 사건 장소인 식당주인 부부가 촬영해 조선족 커뮤니티에 올린 영상이다. 이후 영상 일부를 잘라 만든 편집본이 '대림동 경찰 폭행'이란 제목으로 퍼졌다. 서울 구로경찰서가 17일 전체 영상을 공개했으나, 일부 누리꾼을 중심으로 '여자 경찰이 난동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 '시민에게 수갑을 채울 것을 명령했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곧바로 체력과 힘을 근거로 '여자 경찰 무용론'을 주장하며 여성 경찰을 없애 달라는 이들이 늘어났다. 일부 시민은 "여자 경찰만 체력검사 수준이 낮으니 취객조차 제압하지 못 하는 것 아니냐"며 "수갑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후 성별 채용 체력시험 기준으로 불똥이 튀면서 여성 소방공무원, 여성 직업군인 등을 둘러싼 '무용론'도 재점화됐다. 지난 20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직업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체력검정 남녀 동일기준검정 제도 개선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됐다.

청원자는 글에서 "경찰, 소방관, 군인 등에 무리한 여성인력 증원을 멈추라"면서 "제대로 된 체력검정심사를 거치지 않고 채용되는 여성 경찰들 때문에 국민 치안이 위협받는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에는 24일 오전 기준 약 1만명이 서명했다.

◇체력 검정 과정 성별 차이는… "체력이 가장 중요한 것 아냐"

이들의 말처럼 경찰, 소방관, 군인 선발시 체력 검정 과정 성별 차가 있는 건 사실이다. 성별간 신체적 차이가 분명한 만큼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검정 기준을 적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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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채용시험에서 체력검사 평가 종목은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악력, 100m 달리기, 1000m 달리기 등 총 5개다. 각 분야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신체능력을 요구하는데, 남녀 간 체력차를 감안해 점수 배점 기준은 다르게 책정된다. 예를 들어 윗몸일으키기의 경우 남성과 여성은 각각 1분 동안 58회, 55회 이상 하면 만점인 10점을 받는다.

군인은 육·해·공 각 군별로 장교와 준사관 및 부사관 위주로 뽑는다. 여자 군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예컨대 육군 장교 모집시 체력검정 1.5k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총 3개 항목 중에서 1.5km 달리기 부문 남성 1급(만 25세 이하, 이하 같음)은 '6분 8초 이내'인 반면 여성 1급은 '7분 39초 이내'다. 남성 윗몸일으키기 1급은 2분에 86회 이상, 여성 1급은 2분에 71회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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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도 마찬가지다. 소방관은 채용시험 체력검사에서 배근력·악력·제자리멀리뛰기·윗몸일으키기·왕복오래달리기·앉아윗몸앞으로굽히기 등 6개 종목을 평가한다. 남성 윗몸일으키기 만점 기준은 1분에 52회이고, 여성은 42회다. 오래달리기 만점 기준은 남성 78회 왕복, 여성은 43회 왕복이다.

항상 남성에게 높은 기준이 요구되는 건 아니다. 소방관 체력시험 종목 중 하나로 유연성을 측정하는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의 경우 여성의 기준이 더 높다. 여성은 상체 28cm를 굽혀야 하지만 남성은 25.8cm를 굽히면 만점을 받는다.

최근 체력시험이 입길에 오른 건 체력 검정이 여성에게 유리하며, 남성 역차별 현상을 낳고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특히 경찰 체력시험 중 팔굽혀펴기 부문이 문제시됐다. 1분에 남 58회, 여 50회로 횟수 차이도 있지만 여성은 무릎을 바닥에 대고, 무릎 이하는 바닥과 45도 각도를 유지하면 되는 반면 남성은 무릎을 바닥에서 떼고 머리부터 발뒤꿈치까지 일직선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2020년 경찰대 신입생과 경찰간부후보생 선발 체력검정기준에서 여성의 팔굽혀펴기 자세를 남성과 동일하게 정자세로 바꾸기로 했다.

소방청도 같은 고민을 해왔다. 소방청은 여성 체력 검정 기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앞으로 화재 현장에 투입되는 여성 소방대원 채용시 체력 검정 기준을 현행 남성의 55~80%에서 80~90%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체력 검사 성적이 곧 업무 수행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체력 능력은 업무 수행력과 별개라면서 "만약 힘만으로 뽑는다면 격투기 선수나 운동선수만 경찰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여성 경찰이 남성 경찰 보다 여성 가해자·피해자, 성범죄 및 가정폭력 피해자를 더 잘 상대할 수 있다면서 "경찰 업무의 70% 이상은 사실은 소통이다. 피해자 민원인 말씀 듣고 피해 상황과 갈등을 조정, 중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 업무 중에 육체적인 물리력이 사용되는 업무는 가장 많은 나라나 지역도 30%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이성은 경찰청 성평등정책담당관도 "체력검정평가 결과는 성별보다 연령별 차이가 훨씬 크다"면서 "이런 논리라면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50대 남성 경찰들은 모두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성 수호자' 불신 문제, 기저엔 '여성혐오' '백래시' 있다"
경찰, 군인, 소방관 등의 여성 채용을 두고 성별 체력 검정 차별 문제가 거론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란 뒤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이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논란은 여성혐오와 백래시, 그리고 기존에 여성이 진출하지 않던 분야에 다수 진출하며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발생한 복합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장 연구위원은 "여성 경찰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는지 여부도 밝혀지지 않았고, 전문가들은 오히려 제대로 대처했다고 하는 상황인데도 여성 경찰이 대처를 못했다고 흘러가는 자체가 여성혐오"라면서 "또 남성 경찰이 잘못한 일에는 그냥 넘어가면서 여성 경찰 한명의 대응은 전체 여성 경찰의 대응으로 비화되는 것 역시 집단 내 소수자인 여성이 끊임없이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는 여성혐오의 증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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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갑룡 경찰청장이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JW매리어트 호텔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2019 국제사이버범죄대응 심포지엄' 개회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민갑룡 경찰청장 역시 '대림동 여성 경찰 대응 논란'에 대해 "당시 현장 경찰관들이 나무랄 데 없이 침착하게 대응했다"며 "전 경찰을 대표해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장 연구위원은 또 "이번 논란은 경찰·소방·군인 등 기존 남성 위주의 직업군에 여성 비율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일부의 반발(백래시·진보적 사회 정치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취업난과 함께 기존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던 일자리에 여성이 진출하며 경쟁이 치열해지자 반발감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이어 장 연구위원은 이제 여성 진출이 늘어난 만큼 변화에 발맞추어 선진국식으로 매뉴얼을 정비해야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 동안은 여성 진출이 적었기에 논란이 없었지만, 점차 여성 진출이 늘어날 것인 만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매뉴얼을 정비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경찰, 군인, 소방관 등의 직종에 진출해있는 미국 등 선진국의 체력검정이나 인사, 각종 대응방안 등을 참고해와서 우리식의 법령기준을 만들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선진국식으로 매뉴얼을 정비하고, 실무형 인재를 뽑아야한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는 "선발에서 성별 차별 논란을 없애는 길은 결국 소방관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성별에 관계없이 선발하는 방법"이라면서 "지금처럼 필기 및 체력 검정 위주가 아니라 소방호스 들고 뛰기 등 선진국의 실무 위주 선발시스템을 마련해 실제 현장에 투입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인재를 뽑아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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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내 여성 경찰, 소방관, 군인 인력은 매년 늘고 있지만 아직도 낮은 비율이다.

현재 국내 경찰 인력은 총 12만 487명으로 이중 여자경찰은 1만 3594명(11.3%)이다. 현재 전체 소방관은 5만2259명이며, 이중 여성은 4327명(8.27%)이다. 여성 군인도 늘고 있다. 여성 군인 장교와 부사관은 2016년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국방부는 2022년 여성 군인 비율을 8.8%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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