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무사고였는데"…74세 노인, 운전대 놓았다

머니투데이 / 남형도 기자

2019-02-11 06:15:00

[98세 英 여왕 남편 필립공 면허 반납 계기로 고령운전자 교통 안전 부각…정부·지자체도 대책 마련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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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날'인 10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한 어르신이 비를 피하며 신문을 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사진=뉴스1

#운전경력 40년이 넘는 김모씨(74)는 최근 접촉사고를 냈다. 차선을 바꿔 끼어드는 차량을 미처 보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브레이크를 더 빨리 밟아 사고를 막았을 거라 생각한 김씨는,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했다. 상황 판단력이 떨어지는 나이가 됐다고 여긴 것. 40년 무사고 운전이었는데, 감개무량했다. '운전 베테랑'이라 자부했지만, 그냥 세월에 손 들고 말았다. 김씨는 "운전 하나는 정말 자신 있었는데, 이제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다"며 "차라리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남편 필립공(98)이 운전대를 놓은 걸 계기로, 국내 고령운전자들의 교통 안전에 대한 주의도 다시금 환기되고 있다.

앞서 필립공은 지난달 17일 왕실 별장이 있는 노퍽 카운티의 샌드링엄 하우스 인근에서 맞은편에 오던 차량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냈다. 이로 인해 자신이 몰던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 레인지로버가 전복됐다. 그는 "사고가 발생했던 오후 3시쯤 해가 매우 낮게 비추고 있어, 마주 오는 차량을 볼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이틀 만에 필립공은 안전벨트도 안 맨 채 운전대를 잡았고, 이로 인해 고령층의 운전 허용 논란까지 일었다. 이에 결국 그는 자발적으로 면허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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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98)은 지난달 벌어진 교통사고 논란에 결국 운전대를 놓을 예정이라고 왕실 측이 밝혔다. 사진은 2016년 12월 동부 노퍽 카운티의 왕실별장인 샌드링엄 하우스 인근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필립공./사진=AP/뉴시스
고령자 교통 안전은 영국에서의 문제 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특히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60~70대도 그리 나이가 많지 않단 인식이 커져 운전대를 여전히 잡는 이들이 많다. 김정식씨(71)는 "예전 같으면 늙어서 운전대를 놔야 했지만, 의료 기술 발달로 다들 멀쩡히 잘 다니지 않느냐"며 "아직 운전대를 잡는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 고령자 교통안전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 10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고령자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지난 2008년 2만3012건에서 2017년 3만7555건으로 10년간 61.3% 늘었다.

또 지난 10년간 교통사고로 연간 1724명에서 1864명의 고령자가 사망했고, 부상자도 2008년 2만4168명에서 2017년 4만579명으로 59.6% 증가했다. 고령자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 부상자 수 모두 각각 5.6%, 0.2%, 5.9%씩 늘어난 것.

특히 국내 발생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2008년 5870명에서 2017년 4185명으로 28.7% 줄었지만,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오히려 늘었다. 2017년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고령자 차지 비중이 1767명으로 42.2%에 달했다.

특히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는 2017년 2만6713건이 발생해 848명이 사망하고, 3만8627명이 부상 당했다. 이 또한 증가 추세인데, 2016년 대비 발생건수는 9.3%, 사망자수는 11.7%, 부상자수는 8.2% 증가했다.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를 부른 법규위반으론 '안전운전 의무 불이행'이 53%(1만4167건)로 가장 많았고, 신호 위반(12%), 안전거리 미확보(9.3%) 등의 순이었다. 시간대별로는 오후 2시에서 오후 4시 사이가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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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례를 보면, 지난 8일 오후 6시30분쯤에는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A씨(75)가 자택 주차장에서 주차하던 중 맞은편 식당으로 돌진해 사고를 냈다. 조사 결과 A씨는 후진 주차를 하다 범퍼가 벽에 부딪치자, 순간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엔 창원 터널서 트럭이 중앙 분리대를 들이 받은 뒤 기름통이 폭발하며 차들을 덮쳐 3명이 사망하고 5명이 다쳤다. 트럭 운전자가 76세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고령운전자를 향한 우려가 커졌다.

고령운전자가 일반 운전자보다 인지능력과 사고 대처능력이 떨어지고, 교통사고 위험성이 크단 지적이 커지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정부 및 지자체의 대책 마련도 분주하다.

우선 정부는 올해부터 노인 운전자 관리를 강화, 7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 3년에 한 번씩 면허를 경신토록 했다. 적성검사도 다시 받아야 한다. 기존 5년에서 주기가 짧아진 것이다.

지자체들은 고령운전자가 면허를 자진 반납할 때 혜택도 준다. 부산시는 지난해 1월부터 만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교통카드 10만원권과 목욕탕·안경점 할인 복지카드 등을 주고 있다. 이에 4800여명이 면허증을 반납했고, 고령운전자 사망 비율도 줄었다. 양천구도 올해부터 관내 거주 고령운전자(만 65세 이상)를 대상으로 운전면허증 반납 신청을 받고 있다. 반납시 '운전면허 졸업증서'와 10만원이 충전된 선불교통카드를 준다.

해외에서도 관련 대책을 잇따라 내고 있다. 고령화가 빠른 일본은 1998년부터 65세 이상 운전면허 자진반납제를 시행했다. 또 도로 조명을 늘리거나 도로표지를 키우는 등 고령운전자를 위한 도로환경 정비를 하고 있다. 75세 이상 고령자가 운전 면허를 경신할 경우, 지정교습소에서 안전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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