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해도, CCTV 망가뜨리면 무죄?

머니투데이 / 한민선 기자

2019-06-11 07:57:54

[CCTV 설치 의무 4년이 지났지만…기기 고장났다는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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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어린이집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설치가 의무화된 지 약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동학대 피해 아동 부모들은 CCTV가 '무용지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어린이집이 분실, 훼손 등을 이유로 영상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사실상 부모가 CCTV에 찍힌 학대 장면을 확인할 수 없어서다.

◇"고장났다", "녹화 안 됐다"…'어린이집 CCTV'가 무용지물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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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국민청원

10일 관악구청에 따르면, 피해 아동 부모 A씨는 관악구 소재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2세·3세 자녀의 몸에서 상처가 계속 발견되자 지난달 23일 어린이집을 관악구청에 신고했다.

관악구청이 신고 4일 뒤인 지난달 27일 해당 어린이집을 방문했지만, CCTV를 열람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 측은 "23일 당일 CCTV 영상 저장 장치가 고장 나 밖에 버렸더니 누군가 가져갔다"며 "녹화된 영상을 확인할 수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관악구청은 아동학대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대신 어린이집에 CCTV 영상 보관 의무 위반 등으로 과태료 75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19개월 아기 엄마인 B씨도 지난 3일 "아동학대 CCTV만 지우면 무죄?"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을 올렸다. B씨는 어린이집에서 날카로운 고함 소리를 듣고 어린이집에 CCTV 열람 요청을 했다.

하지만 B씨는 영상을 확인할 수 없었다. B씨는 "'CCTV가 녹화가 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들려왔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바로 경찰을 대동하여 원에 방문했지만 이미 CCTV가 녹화된 외장하드는 복구 업체에 보냈다고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변이었다"고 밝혔다.

CCTV 열람을 하지 못한 학부모는 B씨만이 아니었다. 그는 "예전에도 다른 부모님들이 비슷한 상황으로 CCTV요청서를 냈었다"며 "이때에도 녹화가 되지 않았다고 답변 받은 사례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대가 확실해지면 원이 폐원을 해야 하지만, 학대하고도 CCTV만 잘 망가뜨리면 관리 소홀로 인한 벌금 정도만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청원은 10일 오후 4시 기준 2800여명이 동의했다.

◇아동학대하면 폐쇄, CCTV 훼손되면 300만원…"처벌 기준 강화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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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청이 발송한 '국공립어린이집 CCTV 열람의 날 실시 안내문 공지'./사진제공=전국공공운수노조 보육 1·2지부

어린이집이 CCTV 공개를 꺼리는 이유는 아동학대와 CCTV 분실·훼손의 처벌 수준이 극명하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2015년부터 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는 자는 CCTV를 설치하고 관리해야 한다. 당시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보육교사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를 계기로 의무화 법안이 통과됐다.

현행법상 어린이집은 영상정보가 분실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내부 관리계획의 수립, 접속기록 보관 등 기술·관리적 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반면 아동학대 행위를 한 경우 운영정지, 폐쇄 등의 처벌을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린이집은 아동학대의 직접적 증거를 보여주는 대신 CCTV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방법을 택하는 셈이다.

게다가 학부모들은 학대가 의심돼도 섣불리 CCTV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자신을 학부모라고 밝힌 누리꾼 C씨는 "CCTV를 확인하자고 말하면 신뢰 관계가 깨질 것 같다"며 "괜히 평소 아이를 담당하는 선생님과 얼굴을 붉힐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명확한 정황이 없으면 열람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CCTV 관련 관리 및 처벌 기준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청원을 올린 B씨도 △CCTV 관리 소홀에 아동학대와 같은 동일한 처벌 △CCTV 사각지대 최소화 △부모 원할 시 즉시 CCTV 열람 △실시간 CCTV 확인 등을 주장했다.

또 CCTV 설치 의무 범위를 넓히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유치원의 경우 초중등교육법을 적용받아 CCTV 설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의 '유치원 내 CCTV 설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공립 유치원의 설치율은 13.9% 수준이다.

경찰청은 어린이집 학대 사건과 관련해 피해 아동의 학부모들이 CCTV 영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있다. 피해를 의심하는 학부모가 '정보공개청구' 방식으로 경찰서에 열람을 요청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특정 날짜를 정해 부모들이 보다 쉽게 영상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서울 서초구의 경우 관내 국공립어린이집 대상으로 CCTV열람주간을 정해 'CCTV열람의 날'을 실시한다. 해당 어린이집은 6월 중 1회 열람 희망 영상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한민선 기자 sunnyda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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