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왜 부동산만 '차명보유' 인정해줬을까

머니투데이 / 황국상 기자

2019-06-2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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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 사진=김현정디자이너

잘못된 관행임에도 현실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그 관행의 효력을 인정해 준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부동산 명의신탁에 대해 내린 판결이 그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탈세·투기 등 반사회적 행위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부동산실명법(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부동산실명법 제1조는 "부동산 소유권 등 물권을 실체적 권리관계와 일치하도록 실권리자의 명의로 등기하게 함으로써 부동산 등기제도를 악용한 투기·탈세·탈법행위 등 반사회적 행위를 방지하고 부동산거래의 정상화와 부동산 가격안정을 도모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에 위반돼 무효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 20일 부동산 소유자 A씨가 명의자 B씨를 상대로 자신이 진정한 법원의 명의자이니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라고 낸 소송에서 1,2심에서 패소한 B씨의 상고를 기각, A씨 승소를 확정했다.

농지법을 위반해 충청도 모처의 농지를 보유하던 A씨의 남편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B씨의 남편 명의로 명의신탁을 했고 남편들이 모두 사망한 후 A씨가 B씨를 상대로 명의회복을 시도하면서 생긴 사건이었다. 무려 2가지 법에 대한 위반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2013년 1월 A씨가 최초 B씨를 상대로 1심 소송을 제기한 후 6년 5개월이 지나서야 대법원에서 A씨의 승소가 확정됐다. A씨는 남편이 명의신탁한 토지에 대해 자신이 소유자라는 것을 18년만에 인정받아 토지를 되찾게 됐다.

1,2,3심 모두 A씨가 이겼지만 대법원에서는 다소 이견이 있었다. 대법원장과 주심을 비롯한 12명의 대법관까지 13명이 참여한 전원합의체에서 주심 조희대 대법관을 비롯해 박상옥·김선수·김상환 대법관 등 4명이 A씨의 명의회복 시도가 잘못됐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들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무효가 된 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의 소유로 한 등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불법원인급여(범죄행위 등을 통해 얻은 이익)"라고 지적했다. 민법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상대방에게 지급된 재산이나 이익을 원 소유자가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 남편이 농지법과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명의신탁한 토지의 명의를 회복하려는 것은 민법 규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부동산 명의신탁을 반사회적 행위로 보고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 변동의 효력을 무효라고 규정한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돼 시행됐음에도 대법원은 계속 명의신탁자가 명의신탁 부동산에 대한 반환청구 등 권리행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며 "그 결과 여전히 명의신탁이 횡행하고 있다"고 원심을 파기환송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2년전 대법, 실질주주 아닌 명부상 주주에 '주주권 행사' 인정
이번 부동산 명의신탁 관련 판결은 2년 전 대법원이 주식에 대해서 주주명부에 기재된 명의를 중심으로 소유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았던 것에 비해 후퇴했다는 평가도 있다. 2014년 주주명부상 주주로 기재된 C씨가 D사의 주주총회 결의의 취소를 청구한 소송에서 C씨가 실질주주인지 여부가 문제된 바 있었다. 실제 D사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 돈을 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 때문에 C씨는 실질주주가 아닌 '명의 대여자'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1,2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2017년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C씨가 명의상 주주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C씨의 주주권 행사를 막은 하급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판결을 내렸다. 당시 퇴임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 전원이 이같은 취지에 찬성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C씨 사건에서 "상법이 주주명부 제도를 둔 이유는 주식의 발행·양도에 따라 주주 구성이 계속 변화하는 단체법적 법률관계의 특성상 다수의 주주와 관련한 법률관계를 외부적으로 용이하게 식별할 수 있는 형식적이고 획일적 기준에 의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이와 관련한 사무처리의 효율성과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회사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할자가 주주명부 기재에 의해 확정돼야 한다는 법리는 주식양도 뿐 아니라 주식발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언제든 주주명부에 주주로 기재해달라고 청구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가 자신의 명의가 아닌 타인의 명의로 주주명부에 기재를 마치는 것은 적어도 주주명부상 주주가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주주권을 행사하더라도 이를 허용하거나 받아들이려는 의사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주주명부상 주주가 주식을 인수하거나 양수한 사람의 의사에 반해 주주권을 행사한다더라도 이는 명부상 주주에게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한 데 따른 결과이고 이 주주권의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공 떠넘긴 대법원
A,B씨 사건의 반대의견에 따르면 부동산 차명보유를 허용해준 명의신탁제도의 한계는 명확하다. 일제 치하였던 1912년만 하더라도 종중(宗中) 등 단체의 명의로 등기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종중원 개인의 명의로 종중 소유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등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일종의 변칙이 명의신탁이었다.

그러나 명의신탁은 우리 민법상 부동산 법제의 근간인 '성립요건주의'(등기나 물건의 전달 등 공시방법을 통해서만 소유권 등 물권변동의 효력을 인정하는 입장)에도 위반될 뿐더러 명의신탁이 중간생략등기와 함께 부동산투기 또는 탈세에 악용되는 경우가 잦자 1990년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 1995년 부동산실명법 등을 통해 명의신탁에 따른 물권변동 자체를 무효로 하는 규정이 자리잡게 됐다.

A,B씨 판결의 다수의견 측 해명은 다소 군색해 보인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다수의견 역시 부동산 명의신탁을 규제할 필요성과 현재의 부동산 실명법이 갖는 한계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다"며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해 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이를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본 종례의 판결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에 의해 무효인 법률행위임에도 유효하다는, 모순된 설명인 셈이다.

대법원은 "다만 구체적 사건에서 불법원인급여 제도를 적용하는 등 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입법적 개선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다수의견"이라고 했다. 이에 윤승영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역시 주식처럼 명의자에게 권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야겠지만 부동산 명의신탁이 활용돼 왔던 사례는 너무나 많은 데다 그 가액도 무척 크다"며 "대법원이 예민한 사안에 대한 구체적 판단에 대해 국회에 공을 넘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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