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갇힌 청년들, 그들이 못떠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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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과 한국의 빈곤]④보증금 부담에 고시원 전전하는 청년들…안전은 여전히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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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찾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월세 27만원짜리 고시원 내부. 침대 시트를 걷으니 때가 낀 매트리스가 드러났다. /사진=김지성 기자


층층이 쌓여 더운 바람을 내뿜는 실외기 옆을 지나니 입구가 나온다. '외부인 출입금지' 경고와 달리 문은 활짝 열려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복도를 두고 좌우로 굳게 닫힌 문들이 마주 보고 있다. 20대 가난한 청년들의 보금자리, 고시원이다.

서울 동대문구 고시원에서 6개월째 살고 있는 취업준비생 오모씨(25)는 여름이 시작되고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방에 에어컨과 창문이 없어 해가 떠 있을 땐 찜통이라서다. 오씨는 "에어컨이 복도에만 있어 외출할 때 방문을 열어두고 나간다"며 "도난 걱정보다 찜통이 돼 있을 방 걱정이 더 커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한 평(3.3㎡) 안 되는 월 25만원짜리 방에서 산다. 사라지기 직전 테트리스 블록 마냥 들어찬 침대, 책상, 의자 등의 가구로 바닥엔 빈공간이 거의 없다.

밥상 펼 곳도 여의치 않아 주로 의자에 밥과 반찬을 올려놓고 바닥에 앉아 끼니를 챙긴다. 키가 183cm인 오씨는 잘 때 무릎을 굽혀야 하고, 옷장이 없어 대용으로 쓰는 침대 위 봉에 머리를 자주 박는다고 했다.

오씨는 "인근 원룸보다 월세가 15만원 정도 싸고, 무엇보다 500만원 넘는 보증금이 없어 여기가 최선이었다"며 "취업하고 목돈을 모을 때까진 계속 고시원에 살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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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있어야 할 소화기가 먼지 쌓인 채 고시원 복도에 방치돼 있다. /사진=김지성 기자
송파구 한 서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주모씨(27)의 상황도 비슷하다.

주씨는 한때 뮤지션을 꿈꾸며 실용음악을 전공했지만 1년째 고시원에 살면서 꿈을 접었다. 월세와 생활비, 아픈 아버지 병원비까지 보태다 보니 생계를 유지하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주씨는 "꿈을 좇는 것도 생활이 안정돼야 하는데, 사는 곳부터 불안정하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고졸·비정규직에 지원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씨가 사는 고시원 월세는 40만원. 일터가 있는 송파구 시세는 다른 지역보다 비싸다. 비싼 월세가 안전을 보장해 주진 않았다. 고시원 입구에 붙어있는 피난대비 안내도엔 방마다 소화기가 있지만 주씨 방에는 휴대용 조명등만 설치돼 있다.

방마다 있어야 할 소화기는 고시원 복도 한구석에 먼지가 덮인 채로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제조시기가 2005년 10월인 것도 있다. 소화기 유효기간은 10년이다.

김지성 인턴기자 jskim@mt.co.kr, 최동수 기자 firefl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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