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불매운동, '감정적 대응'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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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생각 다른느낌]아베와 유니클로 오판이 반복되는 걸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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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17일 "지난 11일 임원의 발언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주 결산설명회에서 오카자키 다케시 재무책임자(CFO)가 “불매 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막말을 한 후 불매운동이 오히려 확산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의 매출 규모가 큰 유니클로의 임원이 불매운동을 폄하한 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일본 내 퍼진 잘못된 보도로 국내 정세를 오판했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들도 “한국 여론에 호소하고 한국 국민을 일본에 유리하게 이용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런 왜곡된 정보만 접하다보니 한국 내 일제 불매운동이 이렇게 확산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이번 불매운동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 '노노재팬'과 같은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일본 제품 목록이 공유되고 기존에 예약했던 일본 여행을 취소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국내 일각에서 일제 불매운동의 경제 효과를 운운하며 찬물을 끼얹고 있다. 불매운동이 실제 일본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적고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예측부터 내놓았다. 마치 감정에 치우친 일시적 현상인 것처럼 치부하면서 차분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매운동은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표현으로 단순히 경제적 효과만을 따질 일은 아니다. 양 국간 경제교역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 한 불매운동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번처럼 가장 조용히 광범위하게 진행된 불매운동도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적 측면만 따진다면 아베의 수출규제 조치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의 부품소재 수급이 지연돼 입는 손해만큼 일본도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작년부터 일본의 경제상황이 크게 악화됐는데도 자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수출을 억제한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자유 무역을 주장해 온 일본의 국제적 신뢰 저하, 국제 반도체 공급에 악영향, 수출 감소로 인한 일본 기업의 피해, 한국의 부품 국산화에 따른 일본의 국제 경쟁력 저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아베가 수출규제를 강행한 것은 정치적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아베와 일본 관료들은 외부적으로는 수출관리라고 발뺌하면서도 일본 자국민에게는 정치적 보복이란 본심을 내비치고 있다.

아베는 후지TV 보도 프로그램에서 "강제징용배상 문제에서 국가간 조약을 지키지 않는 국가라면 무역 관리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2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은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 규제 강화를 결정한 이유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에서 ‘G20 정상회의’까지 만족할만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신뢰관계 손상이 정치 문제란 것을 실토한 것이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성 장관의 거짓말은 더욱 가관이다. 세코는 16일 트위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면서 “안전보장을 목적으로 수출관리를 적절하게 실시하는 관점에서 운용을 검토했다면서 대항조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수출규제 발표 직후인 3일 트위터에서 “강제징용 문제 때문에 신뢰관계가 손상됐다”고 떠벌렸다.

흔히 일본인은 자기 의견을 내세울 때 속마음(=혼네)과 겉마음(=다테마에)를 구별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베와 관료들은 겉으로는 정당한 무역 조치인 듯 위장해야 하나 일본 국민에게는 정치적 보복을 강조하고 싶어 결국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이 하고 싶은 말이 샌 것이다.

이번 사태는 아베가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한 공격이며 무역협정에 명백히 위반한 수출규제 조치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1조 ‘수량 제한의 일반적 폐지’ 규정에 정면으로 위반한다. 일본이 21조의 ‘안정보장을 위한 예외’ 규정을 들고 나왔지만 수출 규제 품목이 핵물질, 무기의 원료로 쓰여졌다는 어떤 근거도 없고 전시상황도 아니다. 북한으로 밀수출 했다는 주장도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된 제3국 밀수출 단속 결과를 제멋대로 왜곡한 것이다.

그동안은 한일 간 분쟁에도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 왔고 이로 인해 일본-한국-미국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분업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분업 체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일본이 정치적 이유로 부품소재를 자원무기화 했고 경제적 금수조치란 초유의 사태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일본은 믿을 만한 경제 파트너로의 지위를 상실했고 국내에서는 자원 안보 차원의 부품소재 개발과 수입처 다각화에 집중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일제 불매운동, WTO제소, 외교전 등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해 일본의 무역공격에 대처해야 한다. 일본이 정치적 목적으로 벌인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면 강제징용배상 판결을 언급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국내 일각에서는 일본의 무역 공격에 맞서기는커녕 내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심지어 일본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불매운동 같은 국민의 자발적인 대처도 반대한다. 이는 마치 집 안에 도둑이 들어와 있는데 신고하거나 쫓아낼 생각 없이 가족끼리 문단속 못한 책임이 누구인지부터 따지는 꼴이다. 차분하게 대응하라면서 기본적인 불매운동이나 WTO제소 등을 반대하는 것은 일본의 근본 없는 요구를 들어주란 소리나 다름없다.

국내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왜곡된 정보가 유니클로의 막말과 같은 오판을 가져왔다. 이런 오판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일제 불매운동처럼 아베와 일본 우익이 한국 여론을 부추겨 일본 편을 들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zestt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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