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판결] 집에 불질러 엄마 살해한 딸이 감형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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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서울고법, 1심 징역 22년 판결 파기하고 징역 17년 선고…"불우했던 성장과정 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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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재판부는 피고인이 40대 중반이 되기 전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1심 형량에서 5년을 감형하기로 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도 이런 결정을 허락하실 것 같습니다"

서울고법 형사합의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지난 17일 존속살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했던 1심을 깨고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친어머니 살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5년을 감형 시켜 준 것이다.

사건은 지난해 10월 벌어졌다.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뒤 그 결제대금을 변제하고자 사채, 금융기관 대출 등을 통해 변제를 하던 A씨는 채무가 약 8000만원에 이르자 어머니를 찾아갔다. A씨는 어머니에게 채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고,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A씨에게 "함께 죽자"며 화를 냈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A씨를 질책했고 심적 고통을 겪던 A씨는 3일 뒤 함께 죽기로 결심하고 어머니 집을 다시 찾았다.

A씨는 한 페인트 가게에서 시너 2통을 구매했다. 이후 어머니가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가자 시너 1통을 화장실 입구에서부터 주방, 거실 바닥까지 뿌린 다음 라이터로 종이에 불을 붙여 그 종이를 화장실 입구 쪽으로 던졌다. 불길이 집 전체에 번지자 무서워진 A씨는 어머니만 남겨둔 채 집에서 빠져나왔다. A씨는 밖으로 나오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현관문을 밀어 닫았고 그로 인해 어머니는 밀폐된 화재 현장에서 도망치지 못한 채 중화상을 입은 상태로 현관문 입구 쪽에서 발견됐다.

어머니 B씨는 이 화재로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얼마 뒤 숨졌다. 이후 A씨는 존속살해,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어머니는 A씨 동생인 자신의 아들이 뇌사판정을 받게 되자 남편과 이혼한 후 생업을 계속하며 성실하게 A씨와 아들을 부양해왔고, 2015년에는 아들이 사망해 큰 슬픔을 겪었음에도 딸인 A씨가 도움을 요청하자 바로 다음날부터 채무 변제를 위해 12시간여 동안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했다"며 "이런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보면 사랑하는 자식인 A씨에 의해 단 하나뿐인 생명을 잃게 된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보다 5년을 감형한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불우한 어린 시절에 집중했다. A씨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잦은 다툼을 목격하며 자랐다. 또 어머니로부터 체벌과 폭언 및 감금 등의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동생의 죽음도 A씨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쳤다. 청소년기에 자신이 간호하던 장애 1급 남동생의 사망을 겪은 후 A씨는 죄책감 등을 느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A씨는 우울과 불안한 감정 등을 해소하고자 충동적이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니로부터 별다른 정서적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2심 재판부는 "A씨를 하루 종일 면담한 전문 심리위원의 의견을 법정에서 들어본 결과 A씨의 불우했던 성장과정, 남동생이 1급 장애를 갖게 된 것과 사망하게 된 것에 대한 죄책감, 그로 인한 채무, 채무를 해결하고자 인생 밑바닥까지 갔던 아픈 시간들, 이 모든 것을 어머니께 털어놓았으나 심한 질책을 받고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된 과정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의 모습을 어디에선가 지켜보실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실 것"이라면서 "징역 22년도 속죄의 시간으로 결코 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재판부는 1심 형량에서 5년을 감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씨는 앞으로 17년 동안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며 "어머니에게는 단 하루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피고인에게는 17년이나 주어진 이 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고 어머니께 바치는 글 첫 페이지를 오늘 써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법정에서는 판사의 목소리를 통해 A씨가 직접 쓴 반성문도 공개됐다. A씨는 반성문을 통해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엄마 생각에 가슴 아파 울다 보니 너무나도 늦게, 이제야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어머니의 눈물. 왜 그때 엄마의 눈물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매일 눈물 속에서 저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저희 엄마를 모두 깊이 새기며 평생 이 벌을 받고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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