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무차별 폭행에는 최대 '권총' 제압 가능…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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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총은 쏘는 게 아니라 던지는 것”이라는 현장 경찰관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사라질 수 있을까. 경찰이 ‘비례의 원칙’에서 한발 더 나아간 물리력 사용 기준을 마련하고 이르면 올해 11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나선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총기로 범인을 제압하는 장면도 피의자가 경찰관이나 제3자에게 심각한 신체적 위협을 가할 시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최근 경찰위원회 정기회의에서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 제정안’이 심의·의결됐다고 22일 밝혔다. 이 제정안은 경찰청 예규로 발령될 예정이며, 6개월의 경과기간을 거쳐 오는 11월 중 시행될 예정이다.





위해수준 5단계 분류…최대 권총 사용

이번 규칙의 핵심은 대상자의 행위를 크게 ▲순응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 ▲폭력적 공격 ▲치명적 공격 등 5단계로 나눠 그에 상응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점이다.



‘순응’은 가장 낮은 저항 정도다. 경찰관의 지시·통제에 따르는 상황에서 경찰은 언어적 통제, 체포를 위한 수갑 사용, 체포를 위한 물리력 등 위해성이 낮은 대응을 하게 된다. 경찰관의 지시와 통제에는 비협조적이지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소극적 저항’ 상태에서 경찰관은 밀기·잡아끌기·잡기 등 신체 접촉을 통한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 체포·연행하려는 경찰로부터 도주하는 등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지만 위해 수준은 낮은 행위인 ‘적극적 저항’에 대해서는 신체적 통증을 가할 수 있는 신체 접촉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관절을 꺾거나 조르기, 넘어뜨려 누르기 등이 해당된다.



위해성이 높은 4~5단계부터 경찰은 각종 장구류를 사용할 수 있다. 폭력을 행사하려는 자세를 취하거나 대상자가 신체를 이용해 경찰관 또는 제3자를 가격하는 행위는 ‘폭력적 공격’으로 분류된다. 이럴 경우 경찰관은 경찰봉을 이용해 가격하거나 전자충격기(테이저건)를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상자가 흉기·둔기·총기류를 이용해 위력을 행사하거나 무차별 폭행 등 사망 또는 심각한 신체적 부상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앞서 언급된 물리력에 더해 최대 실탄 권총까지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 같은 분류가 적용된다면 최근 논란이 된 ‘구로동 여경’ 취객 진압 사건의 경우 최대 테이저건까지 사용할 수 있다. 피의자가 언어적 통제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의 뺨을 때리는 폭행을 했던 만큼 ‘폭력적 공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잉진압’ 우려에…통제장치 곳곳

이번 규칙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기존 비례의 원칙에서 더 나아가 ▲객관적 합리성의 원칙 ▲대상자 행위와 물리력간 상응의 원칙 ▲위해감소노력 우선의 원칙 등 새로운 3대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자칫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불러올 수 있는 인권침해적 요소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부분은 위해감소노력이다. 현장상황이 급박하지 않은 경우 대상자를 설득, 안정시켜 보다 덜 위험한 물리력을 통해 상황을 종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위해수준을 5단계로 나누고 ‘물리력 사용 연속체’로 도식화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경찰은 의견수렴 절차에서부터 인권침해 요소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규칙 마련을 추진했다. 지난해 6월부터 4개월간 연구용역을 통해 초안을 만들고 학계, 시민단체, 국가인권위원회, 현장 경찰관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 지난 2월에는 인권영향평가를 완료했고, 3월에는 한달간 대국민 행정예고를 통해 재차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안을 확정했다.



경찰은 물리력 사용 시 유의사항으로 크게 여섯가지를 제시했다. 경찰청이 공인한 물리력 수단을 사용해야 하고, 성별·장애·인종 등과 관련한 차별적 물리력 사용은 금지된다. 대상자의 신체 및 건강상태 등을 고려한 물리력을 사용해야 하며 사용 필요가 없는 경우는 즉시 중단한다. 또 대상자를 징벌하거나 복수할 목적의 물리력은 사용이 통제되고 빠른 종결이나 편의 목적의 사용도 역시 금지된다.



물리력마다 사용 한계를 규정한 것도 통제장치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경찰봉은 가급적 대상자의 머리, 얼굴, 목 등 신체 중요 부위를 피해 가격하도록 했다. 특히 최후의 수단인 권총의 경우 체포나 도주방지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사용시 구체적인 유의사항도 명시됐다. 이와 함께 총기 등 고위험 물리력을 사용한 경찰관에 대해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공권력 행사 ‘정당성 확보’ 계기될까

그간 경찰 물리력 사용에 관한 규정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합리적 판단’ ‘필요한 한도’ 등으로 명시돼 구체적인 상황에 따른 물리력 행사 기준으로 삼기에는 모호했다. 이로 인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물리력을 판단, 행사하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매 맞는 경찰’이란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요인이다. 실제 지난해 유성기업 사태 당시 폭력 행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경찰의 대응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곳곳에 산재돼 있던 물리력 행사 관련 규정들이 통합되면서 경찰 법집행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정당성 확보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경찰 관계자는 “물리력 기준 마련은 시작점”이라며 “향후 부단한 교육훈련을 실시해 모든 경찰관이 기준을 제대로 숙지하고 체화하도록 하는 한편 경찰 장비 체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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