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손정우 석방 논란, 디지털교도소까지…청와대 청원 20만 넘어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24)의 미국 송환이 불허된 가운데, 국민들의 공분이 높아지고 있다. 손정우를 비롯해 최근 텔레그램 등 SNS 및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성범죄가 이어지면서 '사회적 처벌'을 촉구하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성범죄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신상이 올라오는 디지털교도소에 손정우의 사진도 올라왔다.




여성계는 이같은 움직임이 "사법부를 향한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았다. 혐의를 적용해 구형하는 검찰과 형을 선고하는 재판부가 지금까지 가해자 중심의 결정을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0부(강영수 정문경 이재찬 부장판사)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불허했다. 이에 따라 손정우는 이날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손정우는 컴퓨터 주소(IP)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에서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약 2년 8개월간 W2V를 운영하며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게시하고 비트코인 4억 원 상당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손정우가 유통한 불법성착취물에는 생후 6개월 된 신생아를 상대로 한 영상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관련 수사가 아직도 국내에서 진행 중인 만큼, 국내에서 수사를 받는 것이 범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같은 재판부의 결정을 두고 국민의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재판장인 강영수 부장판사가 대법관 후보로 오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 박탈을 촉구하는 청원 글이 이날 게시되기도 했다. 해당 청원은 올라온 지 약 11시간만인 이날 오후 10시께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충족했다.



또 이날 디지털교도소를 통해 손정우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기도 했다. 손정우의 이름과 나이는 외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으나, 얼굴 등 상세한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디지털교도소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들을 비롯한 성범죄자나 아동학대, 살인자 등 강력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다. 해당 사이트에는 범죄자의 이름, 나이, 출생지, 출신학교 등이 공개되어 있다.





시민들은 "이런 목소리 높아지는 근본적 원인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은 데 있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국내서 성범죄자가 제대로 처벌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신상공개 등에 관심이 쏠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SNS 등에서 펼쳐지는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해시태그 운동도 이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직장인 A(27) 씨는 "이런 사법부의 솜방망이식 대처를 통해 퍽이나 재발을 방지할 수 있겠다"면서 "이런 판결이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이어져오니까 성범죄 근절이 되지 않는 것이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해 정의를 구현한다는 사법부가 이런 식으로 '성범죄를 저질러도 괜찮다', '성범죄 아무것도 아니다' 등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는데, 어떻게 성범죄가 근절되겠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학생 B(24) 씨 또한 "이 판결을 보고 '한국에서는 희망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성폭력에 대해 관대한 '강간문화'가 만연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다크웹을 통해 이렇게 큰, 세계 최대 규모라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 사이트를 운영했는데도 고작 1년 6개월 형으로 끝나다니 말도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B 씨는 "대체 사법부는 이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나 한 건가.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신생아를 상대로 한 성착취물을 공유했는데, 신상공개는 커녕 제대로 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내에서 마땅한 처벌을 내리지 못할 것 같으면 미국 송환이라도 해야 했던 것 아닌가. 재판부는 이로써 '한국에서는 성범죄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치권과 여성계에서도 사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성범죄에 관대한 법원의 잘못된 결정으로 미국 송환 불허 판정을 받았다. 이 같은 판정과 빈소에 걸린 여권의 조화를 본 많은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또한 이날 '사법부는 신뢰를 스스로 내팽개쳤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사법부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가해자 등의 신상을 전시하며 '이 사이트의 서버는 해외에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쓰라'고 공지한 디지털교도소 등을 보고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는 사법부가 '손정우가 한국에 있어야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를 발본색원할 수 있다'는 문장을 진심으로 쓴 것인지 궁금하다. 검찰이나 법원은 모두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우롱했다"며 "시민은 국가가 판결을 통해 사회에 던지는 공적 메시지를 수신한다. 지금까지 국가는 성범죄와 여성 대상 범죄를 저지른 남성들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따사로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법과 제도가 자신을 지켜주리라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되었다. 이 불신은 전부 사법부가 만든 것이다"라며 "법의 권위는 신뢰에서 나온다. 사법부는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땅바닥에 내던졌다. 신뢰를 내팽개친 사법부를 시민들은, 여자들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문가는 사회적 처벌을 향한 움직임이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국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신상공개 촉구 움직임'에 대해 "사실 우리 사법체계가 가담자들을 적절히, 적합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까지 우리 사법체계가 그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야만 사회적 처벌이 가능하다' 혹은 '가담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는 인식으로 흐른 것"이라면서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 등의 문제를 함께 짚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범죄인을 더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범죄인 인도 제도의 취지가 아니다. 이 사건에서는 손 씨가 국적을 가진 한국이 주권 국가로서 주도적으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손 씨의 신병을 대한민국이 확보해 수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점, 범죄인 인도 조약과 법률의 해석에 비춰볼 때 대한민국이 손 씨에 대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고 미국 송환 불허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손 씨와 변호인이 '국내에서 중형을 선고받더라도 죗값을 달게 받겠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이번 결정이 손 씨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니며 손 씨는 앞으로 이뤄질 수사와 재판에 협조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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