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성소수자 향한 차별·혐오 여전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강주희 인턴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광고된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물이 게시된 지 이틀 만에 훼손된 가운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표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와 안전한 사회·문화적 활동을 위한 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에 따르면, 지난 2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광고판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해당 광고물은 칼로 베어지고, 뜯겨지는 등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 광고물은 무지개행동 등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 5월17일)을 기념해 기획했으며, 지난달 31일 공개돼 8월 한 달간 게시될 예정이었다.



이에 무지개행동은 이날 논평을 내고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훼손한 것은 성소수자들에게 공공장소에 드러내지 말라고 위협을 가하고 혐오를 과시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는 형법상 재물손괴일 뿐 아니라 명백히 성소수자 증오에 기인한 폭력이고 범죄"라고 지적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논란은 해당 광고물을 게시하고자 서울교통공사에 요청하는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무지개행동은 이 광고를 당초 지난 5월 홍대입구 역에 게시할 계획이었지만, 서울교통공사 측이 성소수자 관련 광고가 '의견 광고'에 해당한다며 거부 통보를 하면서 게시가 한차례 늦춰졌다.



이후 무지개행동 등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항의한 뒤에야 지난달 14일 최종 게재 허가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성소수자의 사회적 활동 등에 규제가 따랐던 사건은 과거에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앞서 숭실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이 지난 2월 "숭실에 오신 성소수자/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합니다"라는 신입생 환영 현수막을 학내에 게시하려 했다가 학교 측이 "건학 이념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불허돼기도 했다.



가천대에서도 지난해 학내 성소수자 모임인 '지큐'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기념해 이를 알리는 현수막과 홍보 부스를 설치하려 했으나 학생복지처의 불허로 무산된 바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지만, 성소수자들의 사회·문화적 활동 등에는 여전히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수의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 등 괴롭힘을 겪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4년 인권위가 발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516명 중 41.7%(215명)는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따돌림, 협박, 반복적 지적, 비난, 조롱, 물품 훼손, 신체적 폭력, 성희롱, 성폭력 등 어느 한 가지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가 지난 5월 발표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 연구'에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인의 '명시적 편견'(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인식)은 5점 만점에 3.23점으로, 이주노동자(2.99점)나 북한이탈주민(2.90점) 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유엔(UN) 자유권위원회는 지난 2015년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혐오 차별적 태도를 우려해, 성적지향 및 성정체성을 이유로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 사회적 낙인, 차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을 우리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와 주요정당은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의당은 지난 6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국회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6월 국회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정의당이 추진하는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법이다"라며 "혐오를 처벌로써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법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안전과 존엄을 위해 민주주의의 원칙을 세우고, 인권에서 물러설 수 없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자는 것"이라며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했다.



인권위도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표명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지난 6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등법 제정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이며,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핵심 원리"라면서 "UN 인권이사국으로서 이제 우리는 국제사회의 이 같은 요청에 응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지난달에도 법무부가 마련한 유엔 자유권규약 제5차 국가보고서안에 대해 "차별금지법 제정추진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 노력과 계획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인권위는 "정부는 그동안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계획을 수차례 밝혀 왔지만, 국가보고서안에 기술된 내용으로 차별금지법 추진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입장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행을 위한 가시적인 노력이나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되지 않아 진전된 사항이 없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 추진 계획을 거듭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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