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방조한다" 계속되는 권력형 성범죄, 정부는 '뒷짐'…비판 여론 확산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최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외교관 성추행 의혹 등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성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범죄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성범죄를 방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3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박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할 수 있냐'는 질문에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죄명을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이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성범죄에 대한 입장 표명을 건의할 생각은 있나'라는 질문에도 "조사권과 수사권은 해당 부처가 담당하고 있다. (여가부는) 수사 결과에 대해 지켜보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이같은 이 장관의 태도를 두고 "피해자 보호보다 여당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시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퇴한 바 있음에도, '권력형 성범죄가 맞냐'는 질문의 답변을 회피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성범죄를 방관했다'는 비판은 외교부에도 쏟아졌다. 한국 고위 외교관이 뉴질랜드 근무 당시 남성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지난해 자체조사를 통해 감봉 1개월의 내부 징계 절차를 마무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A 씨는 2017년 말 주뉴질랜드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현지 남성 직원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세 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현지 온라인매체 스터프에 따르면, A 씨는 "나는 동성애자도 성도착자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나보다 힘센 백인 남자를 성적으로 추행할 수 있겠느냐"라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A 씨의 성추행 의혹 논란이 확산하면서 국제 갈등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3일 A 씨를 귀국 조치시켰다.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성인지감수성 낮은 정부가 성범죄를 방조하고 있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권력형 성범죄가 매년 발생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고 있음에도,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 목소리를 외면하고 적극적인 재발 방지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1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혐의로 재판에 넘긴 인원은 총 13명으로 확인됐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인원도 최근 5년간 연속 매년 100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에는 58명이 기소됐다.





정치권에서도 일련의 사안과 관련해 대책 마련 촉구 및 정부의 성인지감수성 결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정재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장관의 사과를 요구하려고 했는데, 사과가 아닌 사퇴해야 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여가부가 아니라 성범죄 은폐부, 방조부다"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여가부 장관의 발언은 무책임하다"며 "여당 눈치 보기에 급급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같은당 김기현 의원도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K-성추행 국가라는 부끄러운 오명, 청와대의 낮은 성인지감수성 눈치 보다 무능외교 자초한 외교부'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외교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의 잘못된 성인지 감수성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국제사회와 국민적 인식에 한참 뒤처져 있는 외교부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 놀랐고, 이 문제가 이렇게 곪아 터지도록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 무능함에 또 한 번 놀랐다"며 "한때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성 관련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최근 발생한 박원순 시장 사건에선 가해자만 애도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한마디 위로의 말도, 진상규명의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청와대가 안이하고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에 외교부도 사태를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가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을 수 있지 않겠냐"며 "청와대와 외교부는 지금이라도 철저한 반성과 함께 청와대의 어느 선까지 개입이 됐는지 등 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절차를 마련하고, 문제 제기 시에 절차가 즉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장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달 14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원래 기관에는 내부적으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부적으로도 조사를 하고 징계를 줄 수 있는 절차 같은 것들은 다 있다"며 "감찰절차 등 무슨 절차든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건 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는 성차별과 성희롱 관행 근절을 위해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9월까지 특별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3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서울시 성차별·성희롱 근절 특별대책위원회'(특위)와 5급 이하 직원이 참여하는 '성평등문화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를 구성해 가동한다고 밝혔다.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실태 파악에는 내부 직원 의견이 가장 중요한 만큼 직원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며 "이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자문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도 구성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특위는 ▲ 피해자 보호 및 일상 복귀 지원 방안 ▲ 2차 가해 방지 및 재발 방지 대책 ▲ 성차별 문화 개선 및 성 평등 문화 확산 방안 ▲ 직원 성차별 인식 개선 및 성 인지 감수성 향상 방안 ▲ 성희롱·성폭력 신고 및 처리 시스템 개선방안 ▲ 성차별적 직무 부여 등 조직 운영방식 개선방안 ▲ 선출직 공무원 성범죄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제도개선 사항 등을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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