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주의보]①쏘이면 사망? 말벌집 직접 제거해보니…

아시아경제

2019-09-12 08:00:00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말벌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는 이른 추석 탓에 벌초 시기가 앞당겨 지면서 벌 쏘임 사고가 급감했지만, 세력이 팽창한 말벌들이 수풀과 산림 너머 최근엔 도심 한복판에도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말벌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말벌 몇 마리만으로도 수천 마리의 꿀벌과 벌집에 타격을 입는 양봉 농가는 매일같이 말벌과의 사투로 비상이 걸렸고, 소방서 역시 이어지는 말벌집 신고 전화에 출동 횟수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 사람과 농가에 끼치는 피해로 인해 공포의 대상이자 대표적 해충으로 지목되고 있는 말벌을 직접 잡아 유해성을 확인해보기 위해 기자가 말벌집 채취 현장을 찾아가봤다.



다수의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말벌 헌터로 알려진 심마니 박성용(59) 대표와 함께 찾은 곳은 경기도 안성의 한 야산에 위치한 기숙학원. 건물 4층 왼쪽 모서리 부분에 건축공사 당시 마감을 제대로 안한 부분 틈에 말벌이 파고들어 집을 지은 것으로 추정됐다. 멀리서 봐도 주변을 날아다니는 십 여 마리의 말벌이 육안으로 관찰됐는데, 지역 소방서에 신고도 해봤지만, 출동한 소방관으로부터 높고 외진 벌집 위치에 집이 바깥이 아닌 건물 틈 내부에 자리 잡고 있어 제거가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는 박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는 학원 원장은 지난해부터 말벌로 인해 학생들이 창문을 못 열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말벌떼 공격 막아주는 방충복(벌복), 그 효과는?



사다리차 기사와 몇 차례 논의 끝에 어렵게 위치를 잡고 투입된 현장. ‘말벌복’이라 불리는 방충복을 입고 말벌에 대한 주의사항을 교육받은 뒤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마주한 말벌집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마감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벽돌 한 개 크기의 틈을 파고든 말벌은 그 속에 넓고 깊은 자신들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를 부수자 수백 마리의 말벌이 쏟아져 나와 공격을 시작했는데, 순간 시야를 가릴 정도로 몰려든 벌들은 그 소리와 쏘아대는 독침으로 있는 힘껏 위협을 가했다. 4층 규모의 말벌집 안엔 애벌레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이 집을 제거하자 그 안엔 작년에 지은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는 국내 대형말벌 10종 중 ‘참말벌’이라 불리는 말벌이 왕국의 주인이었다.



곧이어 향한 현장은 전북 고창의 한 폐가, 인근 감 농장 주인의 신고로 찾은 이곳에선 몸에 털이 나 있고 집을 비교적 작은 규모로 짓는 털보말벌의 집이 확인됐다. 처마 밑 비교적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있어 먼저 두 개 나 있는 집 구멍 중 한 곳을 막아 쏟아져 나오는 벌을 잠자리채로 잡고, 집은 통째로 지퍼 망에 담은 뒤 끝을 뜯어 손쉽게 제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외래종 등검은말벌로 인한 양봉농가 피해만 연 1,750억



쉬는 것도 잠시, 인접한 전북 정읍에서 등검은말벌집 제보가 들어왔다. 2003년 부산 영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빠르게 북상해 지금은 한반도 전역에서 관찰되고 있는 ‘위해 2급종’인 등검은말벌은 특히 꿀벌에 대한 공격성이 토종 말벌보다 높아 양봉 농가 최대의 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10m 높이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등검은말벌집은 그 크기가 상당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의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공간이 협소해 사다리차나 크레인이 들어오기 어려운 상황. 박 대표는 승목기를 착용하고 오직 두 팔의 힘에 의존해 나무 끝으로 올라 벌집이 매달린 가지를 잘라 밑으로 내려보냈다. 엄청난 크기만큼이나 수백 마리의 등검은말벌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잠자리채로 벌을 잡는 내내 시큼한 향이 코를 찔렀고, 공격성 역시 앞서 만난 말벌이나 털보말벌 보다 강력했다. 지난 2015년 말벌집 제거작업을 마친 소방관이 방충복을 벗던 중 벌 쏘임 사고로 사망한 사건의 주범 역시 이 등검은말벌이었다. 덕분에 33도 더위에 제거작업을 마쳤음에도 방충복을 입고 100m가량을 걸어 나와야 했다. 벌집제거작업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모든 작업을 마치고 벗는 순간임을 박 대표는 수시로 강조했다.



땀과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진 말벌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말벌 중의 말벌 ‘장수말벌’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박성용 대표를 붙잡고 장수말벌 취재가 가능한지 문의했고, 며칠 뒤 야산 벌목꾼들로부터 장수말벌 제보가 들어왔다는 전화에 필자는 그 즉시 경북 문경으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 ‘장수말벌’, 독 주입량 꿀벌의 수십 배



사방이 나무와 수풀로 둘러싸인 야산, 간벌작업 중 말벌 쏘임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벌목꾼의 제보로 찾은 산에서 대략의 위치만 듣고 장수말벌 집을 찾아야 하는 상황. 여기에 전날부터 쏟아진 빗줄기에 벌들의 움직임 또한 잦아들어 있었다. 어렵사리 주변 탐색 끝에 찾아낸 장수말벌의 집은 수풀 사이 나무뿌리 밑에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보통 땅속이나 나무 그루터기에 집을 짓는 장수말벌은 다른 말벌을 2배 확대해놓은 크기와 위력을 자랑한다. 장수(將帥)라는 이름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간밤 내린 비로 움직임이 둔해진 장수말벌의 집 입구를 뜯어내자 한 마리, 한 마리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붙잡는 순간 내뿜는 독의 양은 흡사 주사기에서 백신 용액을 뿜는 것에 비견할 만했다. 특히 집에서 나오는 벌들을 손으로 잡던 중 손에 잡힌 벌은 장수말벌 중에서도 크기가 2배 가까이 더 크고 날개와 몸통의 움직임이 격렬했는데, 이를 본 박 대표는 여왕벌이라고 답했다. 이 한 마리의 벌로부터 이 집과 일벌과 애벌레가 생성됐다 생각하니 일순 소름이 끼쳤다. 농가에서는 말벌 여왕벌이 활동하는 3월에서 6월 사이에 이들을 방제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으나, 한 군집의 여왕이 그리 손쉽게 잡힐 리 없었다. 본래 야산과 수풀, 나무 밑동에만 터를 잡던 장수말벌 여왕벌들이 인간과의 접촉이 잦아짐에 따라 일반 가정집에서 겨울잠을 자고 그대로 그곳에 집을 짓기 시작해 최근엔 도시에서도 심심찮게 장수말벌 발견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 올해로 28년째 말벌집 제거 작업을 했다는 박성용 대표는 최근 폭증한 등검은말벌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밝혔다. 토종말벌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집단성이 강하고 집을 크게 지어 함께 생활하는 개체 수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 양봉 농가를 비롯한 민간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현장에서 그가 느낀 우려는 수치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양봉 농가 추산 등검은말벌로 인한 피해액은 약 1,7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마다 피해액은 더욱 늘어나 5년 후엔 누적 피해액이 1조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국내 말벌전문가인 최문보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연구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등검은말벌이 국내 생태계를 잠식한 상황에서 말벌집 제거만으로는 개체 수 조절은 어려울 것”이라면서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되고, 양봉 농가 피해가 급증하는 만큼 등검은말벌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기초생태와 방제연구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 해 뱀으로 인한 사망사고보다 벌 쏘임 사망사고가 많은 대한민국, 여기에 생태계 상위 포식자로서 먹이사슬의 균형을 유지해주던 토종말벌의 역할이 외래종 등검은말벌로 인해 위협받기 시작하면서 해충으로 오해받던 말벌의 입지는 점차 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다. 농가 산업 피해와 매년 발생하는 사망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말벌에 대한 근본적인 생태연구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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